애증의 역사_흥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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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꼬랑지를 감추려고 한다. 도둑처럼 왔다 가려던 가을 끝자락에서 한번쯤 붙들고 늘어져야지. 못이기는 척 한허리 베어 줄 주모같이 넉넉한 계절 아니던가! 계절 바뀔 때면 신병처럼 도지는 가슴구녕 메우기는 서라벌 옛 터만한 곳이 또 없다. 경주보다 포항이 더 가까운 안강은 지나는 길에 들러가기엔 거슥하고 일부러 찾기엔 또 아쉬운 그런 곳이다. 근처에 흥덕왕릉, 옥산서원, 독락당, 양동마을 등이 있다지만 경주 걸음에 가기엔 멀고 포항 걸음에 들러 가기엔 번거롭다. 마음을 내기로 한다.

수종(秀宗)은 형 헌덕왕이 죽자 왕(흥덕)이 되었다. 수종의 아내 장화부인은 맏형 소성왕의 딸이다. 수종은 형과 힘을 합쳐 애장왕(조카)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다. 아내의 친오빠이자 처남을 죽인 것이다. 이때는 이미 장화부인을 아내로 맞이한 후였다. 장화부인은 혈육을 죽인 삼촌을 남편으로 모시고 산 기구한 운명을 지고 살 수는 없었던지 수종이 즉위하던 그해 세상을 버렸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던 수종은 깊은 슬픔과 그리움에 빠졌다. 신하들이 왕비를 새로 맞을 것을 권했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때 마침 당으로 갔던 사신이 앵무새 한 쌍을 데려왔다. 오래잖아 암놈이 죽어버렸다. 혼자 남은 수놈은 잠시도 쉬지 않고 구슬프게 울었다. 자신의 운명을 닮은 녀석이 안타까운 나머지 거울을 걸어주었다. 제짝이 돌아온 줄 알고 쪼아보고는 그것이 자신의 그림자인 줄 알고 낙심한 수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안타까운 수종은 노래를 지어 위로했다. 자신의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앵무새의 주검이 슬펐으리라.

즉위한지 10년 후 아내와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수종이 죽었다. 후사를 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버린 후 왕실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왕위를 두고 실력자들 간에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희강이 즉위하였으나 민애에게 죽고 민애는 곧 장보고의 힘을 업은 신무에게 죽었다. 나라는 큰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다정도 병인 냥 애증의 한이 나라의 운명과 함께 기울어갔다.

흥덕대왕은 보력 2년 병오(826년)에 즉위하였다. 얼마 못되어 당나라에 사진으로 갔던 사람이 앵무새 한 쌍을 가지고 왔는데 오래잖아 암놈은 죽고 홀로 된 수놈이 늘 구슬프게 울어마지 않았다. 왕이 사람을 시켜 거울을 그 앞에 걸도록 하였더니 새가 거울 속에서 제 그림자를 보고 제 짝을 만날 줄 알았다가 그만 거울을 쪼아보고는 그것이 그림자인 줄 알고 슬프게 울다가 죽었다. 왕이 노래를 지었다 하나 사실을 알 수 없다_삼국유사

왕이 [왕비] 생각을 잊지 못해 슬픔에 싸여 즐거워하지 않았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글을 올려 다시 왕비를 맞아들일 것을 청하니, 왕이 말하였다. “외짝 새도 제짝을 잃은 슬픔을 가지거늘, 하물며 훌륭한 배필을 잃었는데 어찌 무정하게도 새 부인을 맞는다는 말인가?” 그러고는 끝내 따르지 않았다. 또한 왕은 시녀들조차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좌우의 심부름꾼은 오직 환관뿐이었다_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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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좋은 새벽이면 카메라꾼들이 제법 닥치는 곳이다. 배리삼릉에 비할바 아니지만 무성한 솔숲이 신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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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거진 힘줄이 살아있음을 웅변한다. 늦은 오후의 빛이 찢어지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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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신라왕릉 가운데 규모가 거대하고 형식이 온전한 대표적 왕릉이다. 근처에서‘’이라 새겨진 비석의 파편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을 특정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봉분 밑으로 판석을 세웠으며 12지신상을 조각하였다. 둘레로 박석을 깔고 난간을 둘렀으며 구멍을 뚫어 관석을 끼웠는데 지금은 기둥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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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비를 세웠던 귀부가 남았으나 심하게 손상되었고, 비신과 이수는 망실되어 찾을 수 없다. 남아 있었다면 장대했을 것이다. 기록되어 있었을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내 이야기나 앵무새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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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네 귀퉁이마다 돌사자가 지키고 있으며 좌우 전방에 무인석과 문인석 각 1쌍이 시립해 있다. 무인석 가운데 하나는 우람한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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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네 방위에 사자 네마리가 시립해 있는데 자세와 생김이 모두 다르다]

[봉분을 빼곡하게 둘러 애워싸고 있는 12지신상. 이런 장면을 만나면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삼각대 열고 증명사진 찍을 엄두는 내지 못한다. 딱 하루면 될텐데…멀리서 찍고 따내던지 해야지 가까이서는 거리가 안 나오고 광각으로는 외곡을 피할 방법이 없다. 가로 세로 맞춰서 따 내려면 열일 정도로는 택도 없다. 일단 기록이나 해두자 싶어 담아 놓기만 몇 번째…이제 엄두를 낼 만도 한데 따낼만한 연장이 없는 것이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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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 먼 곳까지 와서 무인이 되었다. 당시에 이미 서역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려니와 그들에 대한 인식이 다분히 호의적이었던가보다.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옛 단상 한대목을 그려보는 것은 깊은 재미가 아닐 수 없다.]

 

2017. 11 / 흥덕왕릉에서 /  GR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신라의 국제적 교류는 저도 잘 알고 있지 않았었는데~ 상당했기는 했나봅니다.
    일설에는 울산항이 고려의 벽란도 만큼이나 그 화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맨큼~ 블라~ 블라~

    무인상을 보니~ 저 같은 막눈도 왠지 모르게 알아 볼 수 있을 듯 싶구요.
    찬찬히 생각해 보니 허황후, 처용 등등도 어찌~ 어찌~ 그렇게 짐작해 볼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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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까운 곳이라 자주 들른편인데 한번도 흥덕왕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적은 없었습니다.
    필력탓이겠으나 흥덕왕의 기구한 운명이 소설과도 같네요.
    다른건 몰라도 흥덕왕이 묫자리는 참 명당인듯 합니다. 안강 들녘 모두 안개가 드리워도 이곳 왕릉만은 말끔하기 일쑤였거든요.
    안개에 미련버린지 꽤 되었지만, 다음에 찾을땐 앵무새로 달래려했던 흥덕왕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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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좋은 사진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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