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삶의 순간은 이목을 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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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Porto)에서의 세번째 아침을 맞았습니다. 오늘은 레일라가 먼저 떠나는 날입니다. 고작  하루 차이지만, 헤어짐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레일라의 숙소로 짐을 옮겨주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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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나 신세를 진 상 니콜라우(Adega de São Nicolau) 앞을 지났습니다. 수석 웨이터 빌에게 “내일도 먹으러 와도 돼?”라고 물었을 때, “아, 내일도 오고 싶으면 우리집으로 와. 이 가게는 내일 쉬거든.”이라고 했었습니다. 워낙 진담과 농담이 구별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 한껏 웃어넘겼는데, 실제로 쉬는 날이 맞았습니다. 아,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작별인사를 하는 거였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올게, 빌. 다시 만나요.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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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의 숙소는 아파트였습니다. 물어보니 가격도 호텔과 차이가 없는데, 뭔가 무척 근사한 곳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도우루(Douro)강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아파트에 묵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레일라의 짐을 꺼내 택시에 태워 보냈습니다. (무거운 짐 덕분에 사진은 없습니다.) 한국, 또는 마닐라, 만약 브랜치 이동을 한다면 싱가폴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택시가 떠나는 것을 보고 돌아서니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함께 온 여행은 함께 떠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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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기 위해 히베이라(Ribeira)의 한 카페를 찾아갔습니다. 프랑세지냐(Francesinha)와 문어샐러드를 시켰는데, 샐러드 쪽이 훨씬 맘에 들었습니다. 전날 찾아갔다가 공사중이어서 헛걸음 한 카페 산티아고(Cafe Santiago Da Praca)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최고의 프랑세지냐를 먹어봤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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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광장으로 나오자 전통 복장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역동적인 동작으로 깃발을 돌린 청년은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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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쇼핑몰(El Corte Inglés de Gaia)을 잠시 구경하고 다시 알리아두스(Aliados)지구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오후는 여유있게 보내기로 맘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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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고 걸어서 건넜던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Luís I)를 전철로 건넜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우루강이 벌써부터 그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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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내려 알리아두스 뒷골목을 어슬렁거렸습니다. 느긋하게 걷다가 자꾸 옆길로 새면서 클라우스 포르토(Claus Porto)의 매장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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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포르토는 1887년 설립된 천연향수비누 브랜드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포르투갈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았고, 최근에는 오프라 윈프리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사용 중이라고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깔끔하고 세련된 매장에서 여러 종류의 비누를 구경했습니다. 한국의 매장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하나 저것도 하나 고르다보니 잔뜩 사버렸습니다. 매혹적인 향기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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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은 늦은 오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Taberna Dos Mercardores)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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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간에 맞춰 달려갔지만, 이미 식당 앞은 만원이었습니다. 여덟팀이 줄을 서 있고, 입구의 웨이터와 뭔가 얘기를 나누더니 일부는 들어가고 일부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차례가 되어 물어보니, 이미 예약은 다 찼고(정확히는 5일 후까지 예약이 다 찼고) 자리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안쪽을 보니 테이블이 여섯개, 아주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혹시 기다린다면 들어갈 수 있을까 물어보니, 예약한 손님이 취소하거나 나타나지 않으면 기회를 준다고 했습니다. 식당 앞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40분 쯤 지났을까, 웨이터가 다가왔습니다. “자리로 안내하죠. 예약한 분이 오지 않았네요.” 기꺼운 마음에 안쪽 자리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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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드라이한 도우루산 화이트와 함께 조개찜, 농어구이, 문어볶음밥을 즐겼습니다. 오지 않았다면 정말 평생 후회했겠다 싶은 맛이었습니다. 다른 포르투갈 식당에 비해 덜 짜고 풍미가 훌륭했습니다. 모노클(Monocle Restaurant Awards 2017) 수상은 당연한 것 같았습니다.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경험하게 해준 스탭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습니다.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포르투의 골목을 걸었습니다. 깊은 밤의 골목에서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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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의 밤을 오랫동안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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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호텔 앞의 길냥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이 녀석은 틈만 나면 호텔로 들어와서 앉아있다가 스탭들에게 쫓겨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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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공항(Aeroporto Francisco Sá Carneiro)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Frankfurt Airport)으로 향한 뒤, 올 때처럼 짐을 찾고 터미널을 옮기고 다시 수속을 밟았습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귀국행 비행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독일까지 왔으니 소세지는 먹어봐야지, 라운지에서 맥주와 함께 이른 저녁을 먹고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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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로 떠나기 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를 봤었습니다. 삶이, 사랑이 눈부시게 빛나는 장면들을 보고,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맑은 눈물 한방울 떨궜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의 짧은 시간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지만, 삶의 방향이 어쩌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방향이 다시 포르투갈로 향할 때, 그 때는 다시 세상의 끝에 가서 바다와 마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방향이 영원히 바뀌어질 때 항상 드라마틱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들은 가끔씩 믿을수 없을 만큼 이목을 끌지 않는다… 이 환상적인 침묵 안에 특별한 고결함이 있다.” – 파스칼 메르시어

카테고리:Drifting, Eat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고생하신 덕분에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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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언제쯤 포르투칼엘 가 볼 수 있을까요 ㄷㄷㄷ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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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스탈님의 문체와 사진은 무언가 말을 걸어주는 듯한 느낌이라 좋습니다. 그간의 소중한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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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느덧 익숙해졌다 싶은 여행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을 길게 붙잡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이 포르투의 밤 골목사진에서 진하게 묻어나네요. 그간의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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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너무나 멋진 곳이고 너무나 멋진 여행기였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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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포르투칼과의 인연
    멋지고 맛있고 향기롭고 애잔합니다.
    저는 그간의 여행기와 리스본행 야간열차부터 봐야겠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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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좋네.. 나보다도 더 알차게 다닌듯. 다음에는 꼭 프랑크푸르트에서 최소 1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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