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직장이 비교적 가까워 궂은 날씨만 아니면 걸어서 출퇴근한다. 걸으면 평소 보지 못하고 휙휙 지나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회색 콘크리트의 척박한 틈새를 비집고 삐죽 고개를 내민 잡초들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목격하는 일도 그 중 하나다. 뿌리 내릴 흙이 한줌이라도 있을까 싶은 의외의 장소에도 그들은 보란 듯 연녹색 이파리를 활짝 피고 있다. 제 발로 자리 잡았을 리 만무하건만 식물은 일말의 불평 없이 주어진 生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침소봉대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발 달리고 자유의지까지 탑재하고 살아간다는데 감사함을 느끼고, 그들을 통해 주어진 삶을 겸허히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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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료한 주말, 가족들과 국립부산과학관으로 향했다. 그냥 집 구석에 있자니 바닥으로만 뒹굴고 코에 바람이라도 좀 넣어줘야 주말을 헛되이 보냈다는 죄책감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도로는 한산했기에 네비게이션 아가씨가 안내해주는 예정시간 그대로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이라 와이프와 나는 관람거리들에는 관심이 없던 탓에 아이 손에 티켓 한 장 쥐어주고는 홀로 전시관 안으로 들여보냈다. 열살 소년에게 이런 일은 혼자서도 척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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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자유시간에 나는 과학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계단도 올라보고 한쪽 귀퉁이 구석진 공간으로도 돌아보고.. 하릴없는 걸음 중에 은근히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들을 만났다.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각자의 자리에 심겨진 녀석들. 볼 앤 체인같은 묵직한 화분에 단단히 속박된 그들은 비현실적으로 하얀 벽을 등진 채 일정 간격으로 사열해 있다. 관심을 두고 바라보니 저마다의 생김과 표정이 재미나다. 나는 졸업사진 촬영하듯 한번에 화분 하나씩 정성껏 찍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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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을 뜻하는 ‘Still life’는 직역하면 ‘정지된 생명’이다. ‘고요한 물건’을 의미하는 ‘정물(靜物)’과 비교할 때 이 얼마나 사진적 표현인가. 카메라의 셔터막이 열리고 닫히는 찰나의 순간, 생명은 정지된 채 이미지로 박제되고 필멸(必滅)은 불멸(不滅)로 영원성을 획득한다는 철학의 사유를 담지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스틸 라이프를 이리 거창하게 정의하고 나니 같이 곁들일 사진들이 급격히 후달림을 느낀다. 뭐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렇게 어름어름 매거진에 포스팅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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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학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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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Essay, uncategorized태그:, , , , ,

1개의 댓글

  1. 오브제적 재정의와 다가섬

    심겨진 아이들의 운명적 운명은~ 어쩜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우리네 인생과 닮은 듯 싶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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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사진 참 잘 찍는다는…ㄷ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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