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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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남쪽. 그곳은 피안이고 동경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이곳이 어째서 피안이고 동경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지 않지만 하도 오래 되서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잊어버렸다. 그땐 투하된 노력이 최소한 대등한 경제적 가치로 치환되어야 옳다고 믿었다. 투입은 줄이고 산출을 늘이려면 계획을 짜야 했고 가성비를 높이려면 그것은 더 치밀해야 했다. 바쁘게 움직였다. 계획에 맞춰 움직이고 먹고 볼거리를 찾아 다녔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면서 뿌듯했고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깃발 따라 찍고 찍고 다니는 사람들이 안타갑다고 생각했다. 난 그들보다 좀 다른 … 더 깊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 문득 생각났는데 윈난에 대한 로망은 ‘천룡팔부’로부터 시작되었지 싶다. 단씨성을 가진 바람둥이 녀석이 주유하면서 만나게 되는 기연과 사랑의 대서사시는 어른이에게 더 없는 재미였다. 북송과 요나라가 대치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서하, 토번, 대리국에 이르는 거대한 스케일을 담아낸 ‘천룡팔부’는 김용(필명)의 구라가 절정에 이른 시절 발표한 무협지다. 단예, 교봉, 허죽 3형제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실적 느낌의 이야기는 저리가라. 선술과 요술이 낭자하게 펼쳐지고 기연을 얻어 얼떨결에 신공을 익히고 초절정 고수가 되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다. 절세미인을 만나 사랑이 싹트지만 알고 보니 배다른 남매라네. 두둥!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의 원인제공자 되시는 단예의 아버지. 이야기 캐릭터 중에서 제일 부러운 이 양반은 대리국 15대 황제 단정순을 모티프로 만든 캐릭터 되시겠다. 젊은 시절 천하를 주유하러 갔다가 만나는 모든 미녀들과 인연을 맺게 되고 훗날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소설 막판에 갈등이 해결되고 자신의 여인들과 함께 스스로 최후를 맞는 의리의 카사노바 아저씨. 그 아버지에 그 아들(사실은 친아버지가 아닌 것으로 결론나지만) 단예란 놈도 마찬가지다. 부러운 놈.

그래서 … 아무튼 사랑과 모험이 넘치는 이곳은 상상속 샹그리라였다. 왕소저나 목꾸냥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희미해질 무렵 이야기의 무대가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운 풍광과 산과 강이 갈라놓은 작은 문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존하는 그곳이 궁금했지만 아직은 로망일 뿐 닿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푸얼차와 다큐멘터리 ‘차마고도’가 아니었다면 운남은 아직까지 상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안오냐?”
“가야죠!”
“언제 올래?”
“마음은 거기 살아요.”
“후다닥 다녀갈 거면 오지마.”
“…”
“여긴 그러고 와서는 몰라. 적어도 한 달은 작정하고 와라.”

계획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 말고는 정한 것이 없다. 눈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어디라도 가게 되면 가겠지. 처음 며칠은 어슬렁거렸다. 눈뜨면서 찻물 올리고 있으면 화롯불을 바쳐들고 할아버지가 올라오신다. 차 마시다 할머니 차려 놓은 늦은 아침을 먹거나 집 앞 식당에서 미시엔(운남 쌀국수)이나 콩국물과 튀긴 빵을 먹었다. 차실에 가서 놀거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해질녘엔 친구만나 한잔하고는 꽁꽁 얼어서 들어왔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차곡차곡(차와 술을 번갈아 마시는 것) 뼈가 녹았으면 싶을 만큼 마시기도 하고 이마저 시큰둥해지면 츄리닝 바람으로 안마집가서 코를 골았다.

말하자면 이곳은 쿤밍에서도 신도시랄까! 경제개발구로 개발되고 있는 곳이다. 현대식 초고층 건물에 삐까번쩍한 세단부터 70년대나 있을 법한 풍광이 공존한다. 물론 옛 풍광들은 쾌속으로 지워지고 있다. 거리 노점 뒤로 황금빛 초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하수도 시설도 마무리 하지 못한 너덜너덜한 길목에서 화이트칼라 삐끼들이 분양광고 짜라시를 돌리는 활화산 같은 이곳에서 동네아저씨마냥 어슬렁거리면서 눌러 놓은 기록 몇 장을 늘어놓고 보니 쌉쌀하던 공기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여행! 잘 하고 온 것 같다.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1개의 댓글

  1. 대강 겪어본 대륙 분위기가 말입니다. 막 물불 안가리면서~ 눈뜨고 있음에도 코베어갈 듯한~
    근데, 구름의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분위기는~ 얼굴에 천사표 같은 그런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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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특별날것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시선이 참 좋습니다. 페북에서 흑백으로 먼저 접했는데, 컬러는 또 컬러대로 맛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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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현지에 녹아들어 촬영하신 느낌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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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오냐?

    저도 가고 싶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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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제목이 참 멋집니다. 글과 사진은 더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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