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er for blessing


새벽 알람에 눈을 떴다. 5시 40분..

아늑한 이불 품을 떠나기 아쉬워 잠시 웅크렸지만, 새해 일출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일찍 일어나려고 전날 종각 타종장면만 본 후에 바로 잠자리에 들었기에 그다지 피곤하지 않다.

내 기척에 새벽 잠 설칠까 살그머니 침실을 나왔는데 창 밖 풍경은 아직도 한밤이다. 예보에 다르면 아침해는 1시간 반 뒤에나 뜰 것이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이 시간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괜찮은 곳에 주차하고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추운 아침을 녹일 커피도 보온병에 담은 후 목적지인 왕룡사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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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새벽도로 풍경에 라디오 단추를 눌렀다. 새벽에 잘 어울리는 차분한 목소리의 라디오 진행자. 그가 말하길 세상에는 세 가지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밥상, 둘째는 손님 그리고 마지막은 아침 해란다. 흠.. 마지막 단어는 게으름 피지 말고 성실하게 살라는 뜻이리라. 단 하루지만 새벽부터 부지런 떨었다는 보람에 어깨가 으쓱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룡사로 오르는 산길에 접어든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이들의 차량으로 앞쪽은 이미 붉은 행렬을 이루고 있다. 이 곳 왕룡사는 절 입구까지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어 편리한데 반해 주차공간이 열악해 멋 모르고 진입하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데 일찍 나선 덕분에 적당한 자리에 주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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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cron 35mm, ilford delt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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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커피 홀짝이며 기다리니 건너편 산등성이 너머가 자몽색 여명이 채워진다. 옷 매무새를 여민 후 곧장 대웅전으로 향했다. 신발은 가지런히 벗은 후 옆문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나는 참배용 방석을 깔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아미타불께서 지극히 이기적인 현세의 욕심을 들어주실리 만무하겠으나 떡국보시 값 내는 셈 치고 복전함에 종이돈도 한 장 밀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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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cron 35mm, ilford delt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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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나와 거대한 돌부처가 형산강을 굽어보는 일출 명당으로 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해를 기다린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흡사 추위를 피하기 위해 무리지은 펭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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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cron 35mm, ilford delt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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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오늘 이 시간 이곳을 찾은 십중팔구의 사람들은 나처럼 헛된 욕심 버리고 이타(利他)하여 함께 성불하라는 여래의 가르침과는 지극히 배치되는 개인의 영달과 무병장수 같은 사사로운 서원(誓願)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욕심과 어리석음은 곧 괴로움의 근본원인이니 번뇌를 극복하고 열반하자고 설파하셨던 부처님으로서는 어처구니 없으실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쩌랴. 당장의 삶이 질퍽하고 고단한 우리는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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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cron 35mm, ilford delt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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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는 어김이 없어 예정된 시각에 어제와 같은 해가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어제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사진을 찍거나 복을 기원한다. 나 역시 그들 틈에서 한 해의 복을 빌었지만 이번 기도는 부처님을 향한 것도 아니고 새해의 기운에 기댄 것도 아니었다. 나의 기도는 성실한 삶을 살자는 자신에 대한 다짐이자 당부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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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cron 35mm, ilford delt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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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cron 35mm, ilford delt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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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Drifting, Essay, uncategorized태그:, , , , , , , ,

1개의 댓글

  1. 아~~좋습니다. ^^
    너무 좋네요.

    Liked by 1명

  2. 새해를 여는 마음을 편한 글로 잘 적어주신것 같아요 : )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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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새해를 경건하게 맞이 하셨네요. 전 걍~ 방바닥에 X를~ ㄷㄷ
    주아비님 글에 기대서~ 저도 새해 소원하나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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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작년에 이은 시리즈느낌도 들고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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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흑백 필름으로 새해 첫 일출이라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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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자몽색의 여명이라니, 읽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기분 좋은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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