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Julie Saul Gallery


1986년 소호에 처음 문을 연 Julie Saul 갤러리는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2000년에 첼시에 위치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Julie Saul 갤러리는 사진뿐만 아니라 사진을 베이스로 한 기성, 신진 작가들의 컨템퍼러리 예술 작품들에 집중하며 비디오, 그림, 조각 등의 작품들 전시도 진행한다. 갤러리 안내글에 따르면 컨템퍼러리뿐만 아니라 빈티지 작품들과 관련된 전시들도 종종 진행하는데 지금 걸려 있는 <New Vision: New Generation> 전이 이에 해당할 것 같다. 갤러리의 보유 작품 중에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한국인 비주얼 아티스트 제시 천*(Jesse Chun)의 작품들도 있다.

535 West 22번가 건물 6층에 위치한 갤러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메인 전시홀, 왼편으로는 작은 별도 전시 공간과 작품 보관고, 그리고 사무실로 이어진다. 메인 전시홀은 건물 꼭대기층이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널찍한 창이 뚫려 있어서 아늑한 느낌이 든다. 메인 홀 중간에는 작은 벤치 의자가 놓여 있어 짐을 놓거나 잠시 앉아서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사무실 옆쪽 작은 별실 전시 공간과 작품 보관고의 벽면도 모두 작품 전시를 위하여 활용되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New Vision : New Generation> 전시는 라즐로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Nagy)와 루이지 기리(Luigi Ghiri), 그리고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갤러리 소속 후대 작가들인 알레한드라 라비아다(Alejandra Laviada)와 안드레아 그뤼츠너(Andrea Grützner), 네 작가의 작품들을 비교, 감상하도록 한 그룹전이다.

체크리스트를 손에 들고 처음에 걸려 있는 모홀리-나기의 작품부터 감상을 시작하는데 리스트의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Unique vintage print? 응? 왜 unique 지…” 그렇지, 포토그램은 인화지 위에 피사체를 올리고 바로 빛에 노출하여 만든 작품이니 유일한(unique) 작품일 수밖에 없다. 가격은 POR(Price upon request). 또 귀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는구나 하는 마음에 즐거워졌다. 모홀리-나기가 해리 캘러핸을 시카고 디자인 스쿨로 불러들였고, 캘러핸이 시스킨드를 불렀으니 몇 주 동안 시스킨드, 캘러핸, 모홀리-나기의 역순으로 거슬러 전시를 보고 있는 셈인가 싶기도 했다.

스스로 모홀리-나기의 표방을 명확히 한*** 알레한드라 라비아다의 작품들은 칼라 필터와 다중 노출을 활용하여 모홀리-나기의 포토그램에서 표현되었던 추상성을 추구하였다. 제작의 방법은 다르지만 검은 배경 위에 피사체만 겹치어 다중 노출한 이미지들은 작가의 말처럼 나기의 작품들과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

루이지 기리의 작품들은 그가 처음 내놓은 사진집이자 2012년에 재발간 되었던 <Kodachrome>**** 및 다른 시리즈들의 작품들 몇 점을 전시 중이었는데 이미 몇십 년 전의 컬러 작품들이지만 지금에 와서 보아도 전혀 예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개인적으로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거의 흑백만을 찍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내가 본 색들을 그 감정만큼 재현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이런 멋진 작품들을 보면 컬러를 열심히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리의 작품과 병치하여 전시된 안드레아 그뤼츠너의 작품들은 1970년대(기리)와 2010년대(그뤼츠너)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그  속의 색과 형이 주는 감정들이 닮은 듯했다. 그뤼츠너의 작품들이 조금 더 형에 집중한 느낌이라면 기리의 사진들은 색과 공간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결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번 전시는 모홀리-나기의 작품만 생각하고 왔던지라 전시 보도 자료도 나중에 읽어 보았는데, 기리와 그뤼츠너 사진들에 대해 내가 읽은 것이 완전 허투루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도하기도 했다.

둘 다 80년대 생인 라비아다와 그뤼츠너에게 모홀리-나기와 기리는 일종의 뮤즈가 아니었나 싶다. 전문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이렇게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을 찾아내어 스스로의 표현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하나 특이했던 점은 주 전시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갤러리(아마도 파트너 갤러리인 듯하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하면서 체크리스트에도 상세한 설명 및 가격을 올려 둔 것이었다. 자신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동반 관계의 다른 갤러리 작품들까지 함께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곳 갤러리들을 다녀 보면 확실히 작품의 판매 및 마케팅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느껴지는데, 모든 작품의 촬영 및 인화 정보, 사이즈, 마운트, 에디션 개수, (빈티지 프린트들의 경우에는) 사진 앞, 뒷면에 기록된 텍스트 등등에 대한 설명과 가격을 체크리스트에 매우 상세히 소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전시 관람의 시작도 바로 데스크에 놓여 있는 체크리스트를 찾아 손에 드는 것이다. 반면 대형 박물관이 아닌 일반 갤러리들은 전시 입장료 등이 별도로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작품의 소개(전시) 및 판매 활동만으로도 갤러리의 유지, 운영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일 텐데, 결국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규모의 상업적 예술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개인 수집가들에 대한 컬렉션 어드바이저리 등 작품의 구매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들을 제공하니 그만큼 새로운 고객(컬렉터)이 들어오기 위한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글로벌 중심지인 뉴욕을 일대일로 한국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다양한 전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부러운 환경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요즘 서울에도 점점 작고도 빼어난 장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으니 – 무엇보다도 우리 집 옆의 <사진책방 이라선>이 그랬다. – 돌아간 후에는 이곳에서의 기억만큼 또 좋은 시간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본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Julie Saul Gallery
  • 주소: 535 West 22nd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화-금 10:00 am – 6:00 pm / 토 11:00 am – 6:00 pm
  • 웹사이트: http://www.saulgallery.com

*http://www.jessechun.com

**18년 1월 17일 기준

***Alejandra Laviada, <Geometry of Space>, Blue Sky Books, 2017

****이 사진집의 제목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그 Kodachrome이 맞지만 상표 자체보다는 사진 속에 담긴 일종의 가공된 현실에 대한 소통을 꾀하는 은유적 메시지가 이 제목이 뜻하고자 하는 바이다. – Luigi Ghirri, <Kodachrome>, MACK, 2012,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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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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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 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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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사무실과 작품 보관고, 그리고 작은 별실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모홀리-나기와 라비아다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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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관고 벽면까지 활용해 전시되어 있던 파트너 갤러리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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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László Moholy-Nagy, <Photogramm>, 1929 / Alejandra Laviada, <Interlocking Triangle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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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László Moholy-Nagy, <Photogramm>, 1926 / <Photogramm mit Eiffelturm und Kreisel>, 1928 / Alejandra Laviada, <Blue, Yellow Intersection>, 2014 / <Purple, Orange, Yellow (from Circle Studies)>, 2014 (위) / <Red, Blue, Green (from Circle Studies)>, 2014(아래).

DSCF9555

왼쪽 Andrea Grützner, <Untitled (hotel room)>, 2016 / Luigi Ghirri, <Egmond am zee (from Kodachrome)>,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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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덕분에 요즘 사치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다음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뉴욕 갈 일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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