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앙과 함께 산책을


 

Okin-dong, Seoul 2018

Leica M3, Super Angulon 21mm f/3.4, Ilford FP4, Kodak Portra400

 

대략 십수년 전 즈음에 내손에는 주미룩스 최신형 렌즈가 들려있었고 늘 함께 사진을 찍던 분의 손에는 슈퍼앵글론이 들려있었다. 당시만 해도 최고급 카메라와 값비싼 렌즈를 손에 들고 의기양양했던 것 같다. 항상 함께 사진을 찍고 같이 현상소에 들러 같이 한롤을 가득 인화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같이 사진을 나누어 보던 시간들이 있었다. 36장의 필름을 장당 100원 정도에 인화를 했던 것 같다. 커피 한잔값 보다 필름 한롤 인화하는 비용이 더 쌌으니 가능했던 때다. 사진이란건 참 묘해서 인화한 사진을 놓고 한장을 십분쯤 뚫어지게 바라보다보면 참 많은게 보인다. 요즘처럼 인터넷에 포스팅하고 몇초만에 우와 멋지네! 하는 감성으로는 보이지 않는게 있는 것이다. 아마 그 때 부터 놓치고 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삶의 너절한 편린들. 요즈음의 렌즈에서는 보이지 않는 주변부의 비네팅이라던지 약간의 왜곡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컬러밸런스가 주는 색의 틀어즘 같은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유독 더 사랑스러워진다. 슈퍼 앵글론이 주는 어두운 톤의 느낌들. 서슬이 퍼런 푸른색. 꿈속에서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붉은색들. 주변부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그러니깐 꿈속을 헤매이는 것 같은 묘한 느김들. 그러니깐 애정이라는 것은 별다른 논리적 이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좋으면 좋은거지. 비가오거나 날씨가 구리구리한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내가 사랑하는 카메라와 렌즈를 들러매고 동네를 한바퀴 돈다. 장비에 집중하지 말고 사진에 집중해야한다고?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런데 그런 말이야 말로 참 우습게 들린다. 내가 이걸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뭔 그걸 보지 말란 말인가. 아마도 난 내 손에 내가 사랑하는 장비가 없다면 별로 사진에 관심도 애정도 없어질 것 같다. 언젠가 어느 뉴스 기사를 보니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성공을 하고 돈도 많이 번 이후에도 오랜시간 자신이 비디오가계 점원을 하고 있던 시절부터 타고 다니던 아반테였던가 뭐였던가 그 차를 계속 타고 다녔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불평을 하더라도 자신이 애정하던 자동차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그인들 최신의 자동차가 좋은걸 누가 몰랐겠는가. 아무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엠삼에다가 슈퍼앵글론 렌즈를 들고 나서면 그냥 그 자체로 기분이 좋다.

카테고리:Drifting

1개의 댓글

  1. 써보지는 않았지만 누가 뭐라던 좋아하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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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 기분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저도 참 좋습니다.
    한마디로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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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렇죠. 그냥 좋으면 좋은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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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슈퍼앙글론, 이미 그 이름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모든걸 압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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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슈앙대신 비오곤은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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