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ichi, Hokka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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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지만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시야를 가리는 눈발 때문에 더 흐려보이는 날씨는 설국의 분위기를 한껏 우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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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차는 목욕 거품을 뒤집어 쓴 사이보그의 얼굴 같다.

어제보다 더 많이 내리고 있는 눈이지만,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는 이유는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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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승객들.

외국인 여행자, 내국인 여행자, 현지인

긴 머리, 짧은 머리, 긴 머리

포갠 손, 깍지 낀 손, 깍지 낀 손

배낭, 배낭, 핸드백

음… 또 뭐가 더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몇 컷 셔터를 더 누를 때 쯤, 내 옆에 앉아 있던 저 백인 남자의 일행이 자기 일행을 촬영하는 그런 나를 보고 킥킥 웃음을 보였다.

그 친구와 눈을 마주친 다음 같이 웃고는, 다시 맞은 편 풍경 몇 컷을 더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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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실 문이 객실과 바로 연결돼 있는 것이 흥미롭다. 심지어 문도 열려있고.

메텔은 없지만, 눈으로 뒤덮인 행성에 도착한 은하철도 999를 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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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그도 내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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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남자이자, 외국인 여행자이면서, 긴 머리의 포갠 손으로 배낭을 안고 있던,

내 옆자리의 일행인 맞은 편 그에게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한 다음,

필름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마지막 컷에 걸린 듯 셔터가 더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세로로 무지개를 만들어서 호주 사람인데도 이태리나 프랑스 사람같은 느낌이랄까?

요이치에 멋진 위스키 증류소가 있다고 했는데도 자기들은 더 가야할 곳이 있다고 했다.

뭣이 중헌지 모르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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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치역의 아침은 한산했지만, 여전히 바람과 눈이 뒤섞어 붐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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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을 알리는 은하철도 999 차장의 호루라기 소리가 냉냉한 공기속에서 마치 환청처럼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요이치에서 위스키 한 병을 다 드시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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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으면 저런 표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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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치역에서 목적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작은 사거리를 하나 지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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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서둘러야했던 이유.

요이치 니카 위스키 증류소.

존 스노우가 그랬지. 윈터 이즈 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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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이즈 커밍.

플리즈 깁미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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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 위스키

니까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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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시음장 바텐더의 여유로움에서 고수의 체취가 느껴진다.

“여어~ 낮술하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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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제임스 본드의 거만한 자기 소개처럼,

마이 네임 이즈 니카, 니카 요이치 몰트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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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느낌은 마치 아일레이 몰트 위스키처럼 강한 피트감이 입술을 자극하지만, 곧 부드러운 감촉이 침샘 주위를 감싸 돈다.

그 유연한 손목 스냅으로, “더블같은 한 잔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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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안심이다. 나만 아침부터 퍼마시고 있는 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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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치는 아침에 올만 하다.

아니, 아침에 와야만 한다.

뜬금없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에서 데보라를 위해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린 누들스가 데보라와 나누던 대사가 떠올랐다.

“얼마나 기다렸어?”

“평생을 기다렸지”

시음장 한 쪽에 난 통유리에 기대어 깊게 한 모금 삼키니 세상을 통째로 빌린 것 같은 행복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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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잠시 머물다가 떠나게 되는 니카 위스키 증류소 주변은 도착할 때와는 달리 갑자기 평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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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앤 위스키 때문인지

더 고즈넉해 보이는 요이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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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카테고리:Drifting, Essay, uncategorized태그:, , , , , , , , , , , , ,

1개의 댓글

  1. 일년에 두번은 가야합니다.

    Liked by 1명

  2. 정말 뭣이 중헌지를 모르는 녀석들이로군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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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낭만적인 풍경입니다.
    아주 죽겠네요.
    ㅠㅠ

    Liked by 1명

  4. 위스키 한잔으로 속 뎁히고는 하염없이 눈길을 걷고 싶어지네요.
    저 역시 오타루까지 가놓고는 뭣이 중헌지 몰랐던듯합니다. ㅎ

    Liked by 1명

  5. 뭣이 중헌지 모르는 녀석….ㅋㅋㅋ

    Liked by 1명

  6. 요이치, 아침, 위스키.
    힘주어 머리속에 적고 있습니다.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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