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대학


JR 삿포로역에서 북으로 10여분 걸으면 북해도 유일의 종합대학 홋카이도대 캠퍼스를 만날 수 있다. 교직원으로 밥벌이하는 탓에 여행을 가서도 직업적, 사진적 호기심 범벅으로 그 지역 주변의 학교를 둘러보는 편인데, 운 좋게도 우리 숙소가 지척이라 이른 아침시간을 빌어 살짝 다녀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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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대학의 남문, 정문과 불과 50여미터 떨어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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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중심에 한적하고 너른 캠퍼스는 삿포로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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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이후, 본격적인 근대화의 행로에서 북해도는 본토의 시각에서 볼 때 일종의 아메리카 대륙과도 같았으리라. 비옥한 토지와 동해의 풍부한 수산자원은 철저히 개척되어야 할 대상이었을테고, 이를 착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의 수요는 당시 북해도 개발의 거점도시였던 삿포로시에 대한 대학 설립의 명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배경을 업고 홋카이도 대학은 학생 24명으로 1876년 삿포로농학교[札幌農學校]로 문을 열었다. 이후 20세기에 접어들어 도호쿠 제국대학과 홋카이도 제국대학 농과대학을 거쳐 패망 직후인 1947년 종합대학으로서 편제를 갖춘 채  홋카이도 대학으로 교명을 변경 후 학생수 15,000명에 달하는 현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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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대학의 기원이었던 농과대학 건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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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초기의 모습을 잘 간직한 농대건물 인근에는 “Boys, be ambitious”로 유명한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동상이 있다. 그는 메사추세츠 농업대학 재임시절 삿포로농학교 초대 부학장으로 1년간 부임해 설립 초기 학교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는데, 특히 삿포로를 떠나며 남긴 “소년이여, 야망을”이라는 명언은 당시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말은 아마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한일강제합방과 대동아공영권 주장 그리고 2차 세계대전까지, 어쩌면 일본 젊은이들에게 빗나간 야망마저 끈질기게 추구하게 만든 하나의 불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클라크 박사 턱밑에 새겨진 그의 말 한 마디가 고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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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클라크 박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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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년을 자랑하는 역사 덕에 캠퍼스 곳곳에 산재된 나무들은 저마다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대학본관을 중심으로 캠퍼스의 남과 북을 잇는 메인도로는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있어 가을이면 노랑 단풍으로 채색되어 이 일대는 보나마나 장관일 듯하다. 나는 곧장 본관건물을 돌아 은행나무길과 함께 홋카이도 대학의 또 다른 명소인 포플러 애비뉴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넉넉히 걷기 좋은 폭의 길 양쪽으로 웅장한 포플러 나무들이 사열해 있는 곳이다. 초록초록 싱그러울 포플러길을 상상해보니 이 곳 역시 연인들의 성지일 것임에 분명하다. 이른 아침, 세상 하얀 눈길을 걷고 있는 나 역시 갓 스물 연인에게 뒤지지 않을 이 행복감을 기억회로에 촘촘히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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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다소 볼품없어 뵈는 포플러 애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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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러 가도 양옆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쌓인 눈 위로 삐죽 튀어나온 철재 지지대들로 미뤄보아 연구용 작물을 재배하는 농과대학 소속의 실습농장인듯 하다. 여기 눈 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새하얀 여백은 소매가 짧아지는 속도에 맞춰 진한 초록으로 채색되어갈 것이다. 1936년 세계 최초로 인공설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 대학 물리학과 교수 나카타니 우키치로(1900~62)는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라는 말을 남겼는데, 연구실 창문너머 설경을 감상하던 그에게 하늘이 보내는 편지는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한 사랑의 메세지였음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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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그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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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를 조금 넘긴 시각, 캠퍼스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렇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여행자의 엉터리 날짜감각을 정정하며 어제와 다를 것 없을 그들의 일상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내일이면 오늘과 다른 일상의 쳇바퀴로 돌아갈 나 자신에게도 어깨 토닥토닥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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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ilford hp5+

 

카테고리:Drifting, Essay, uncategorized태그:, , , , , , , , , ,

1개의 댓글

  1. B급 출사 둘째날 비에이 투어 가이드가 여기 훗카이도대 박사 과정 한인 유학생이었어요.
    평일에 공부하고 주말에 가이드하고…
    훗카이도 역사와 농업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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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유학생이 들려주는 홋카이도대학 이야기가 무지 궁금해집니다.
      만약 제가 유학중이라면 주말엔 산으로 들로 사진 찍으러 다닐텐데..취미 사진가로서는 부러운 동네에서의 유학입니다.
      가볍게 핫셀 추천드리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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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행의 감상을 이렇게 담백하게 풀어내는게 쉽지 않은데 말이죠. 이렇게 쌓아둔 글과 사진이 야무지게 뭉쳐져 보석처럼 빛나게 될 겁니다. 너무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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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편안하고 읽기 좋게 써주시는 글들 감사한 맘으로 읽고 있습니다. 글의 담담한 만큼 흑백 사진들도 정말 좋습니다. 🙂

    눈 온 홋카이도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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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모교이자 제 생활의 터진이기도 하지요.한때는 선생으로 되돌아 오는것이 꿈이었는데…
    제 젊음의 모든것 이었습니다.여담입니다만 제가 유학하던 20여년전에 아르바이트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 만큼 요즘 젊은이들이 고생하는 듯 합니다.
    한가지 더 중요한것은 한국 기독교의 한축을 당담했던 김교신 유영모 함석헌 선생의 무교회주의는
    북해도 대학 농과대학 출신의 우치무라 선생의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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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의 모교 그리고 현재도 이곳에서 생활하고 계시단 말씀에 홋카이도대학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비록 두시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젊은시절의 열정이 곳곳에 배어있을 멋진 교정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었습니다.
      캠퍼스를 걷다 북부도서관 근처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학식을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숙소에 지갑을 두고 오는 바람에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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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분에 역사 한장면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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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북해도 대학은 이번 여행에서 신의 한 수 같아요.
    중간에 사진 한장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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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갓 스물을 넘긴 연인이 부럽지 않다니…정말 더 부러워지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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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 포스팅을 놓치다니. 이룬..
    역시나 좋아요.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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