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Deborah Bell Gallery


Deborah Bell 갤러리는 사진 딜러로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아 온 데보라 벨(Deborah Bell)이 2001년 첼시에 개관한 퍼블릭 갤러리이다. 이후 2011년까지 10년간 운영되다가 관장인 벨이 크리스티의 사진 부문 수장으로 옮겨 가면서 잠시 문을 닫았고, 이후 201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와 재개관한 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갤러리 소개글에 따르면 다양한 보유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세계대전 사이의 유럽 사진들,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미국 사진들에 집중하고 있다. 갤러리가 작품을 보유한 작가들은 지금 전시 중인 로즈 만델(Rose Mandel)을 포함하여 일본 사진작가 다이도 모리야마(Daido Moriyama), 유형학 사진의 독일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등이 있다.

센트럴 파크 동쪽 16 East 71번가의 건물에 위치한 갤러리는 가정집 공간을 개조하여 사무실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입구에서 벨을 누른 후 문을 열어주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예스러운 타원형의 계단을 따라 갤러리가 있는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메인 전시홀인 갤러리의 거실 한가운데에는 탁자와 의자, 전시 관련 보도 자료 및 사진집 등이 놓여 있으며, 동쪽 벽면에 자리 잡은 벽난로 위에는 체크리스트와 기타 전시 자료들이 놓아져 있다. 출입문 바로 왼쪽에 위치한 작은 방은 사무실 및 작품 보관고이다.

현재* 진행 중인 로즈 만델(Rose Mandel)의 그룹전 <Rose Mandel & Friends>는 로즈 만델, 이모젠 커닝햄(Imogen Cunningham), 그리고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의 그룹전이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한 <Rose Mandel : A Sense of Abstraction>에 이어 연속한 만델 관련 전시로 아마 올해 갤러리에서 조금 더 집중하기로 한 작가인 듯하다.

1910년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인 만델은 당시의 유명한 사진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오랜 시간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단단히 쌓아 올린 작가로 앤설 애덤스(Ansel Adams)와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도 인정하였던 작가이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만델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의 소개로 CSFA***에서 애덤스의 수업을 들으면서 사진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만델이 화이트와 커닝햄과 교류하게 된 시기도 이때이며, 특히 만델의 사진을 높이 샀던 화이트는 CSFA에서의 공동 강의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 동안 만델의 사진 세계에 대한 지지자가 된다.****

이번에 전시된 총 20점의 작품들 중 만델의 작품은 12점으로 주로 작가가 사진 인생의 후반기(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에 집중하였던***** 물결, 파도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들의 순간을 포착한 추상 사진들이다. 사진을 배우던 초기에 찍었던 도시 사진들에서 점차 자연과 풍경의 불명확한 형들로 포커스를 옮겨 간 만델은 후기에는 장노출과 확대를 통한 이미지 생산에 집중하였다(본격적인 추상 사진 작업 전까지는 4×5 사이즈의 밀착 인화만 하였으나 이후 8×10으로 확대 인화를 하게 된다). 여러 작품들 중 특히 물결 위에서 늘어진 실 조각처럼 부서지는 햇빛의 잔상들은 사진 설명이 없다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진 자체가 주는 미묘한 형이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다시 한번 작품들을 살펴보던 중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마침 안 그래도 질문이 있는데 여기 걸려 있는 커닝햄 사진 말이야. 체크리스트에는 촬영 연도가 1930년대로 되어 있는데 마운트에 연필로 작게 적혀 있는 것은 1920년이거든. 그래서 혹시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아, 정말이네? 잠깐만 기다려 봐. 저기 데보라, 여기 손님이 질문이 하나 있으신데요.”

갤러리 매니저가 사무실에 있던 관장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거? 맞다. 나도 다시 확인해 보려고 하고 있었는데 다른 일 때문에 깜박하고 있었네. 알려줘서 고마워.”

사진이 레퍼런스 된 책들을 뒤져 다시 연도를 확인하고 마운트의 작은 글씨가 1920이 맞는지 한번 더 들여다보고 정신없이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지금 다시 한번 수전의 메일을 확인했는데 (촬영 연도가) 1930년대로 되어 있거든. 지금 그 메일을 전달했으니까 나를 cc로 넣고 네가 수전에게 메일 좀 보내 줘. 확인해 보자.”

그러더니 내게로 고개를 돌린 데보라가 말했다.

“알려 줘서 다시 한번 고마워. 사실 이렇게 오래된 (거진 100년 가까이 된 사진이다) 사진들의 연대를 아주 정확하게 확인한다는 것이 조금 어려울 때도 있긴 하거든. 보통은 작가가 적어 놓은 연대가 맞긴 한대 그들도 가끔 틀리는 경우가 있긴 하기 때문에 다시 확인해 볼게. 그런데 너 그거 아니? 로버트 프랭크도 자기 작품의 연대를 틀리게 적은 적이 있었어. :)”

지난번에 다른 갤러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음, 아마 우리가 미스-프린트했나 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데보라의 반응은 사소한 디테일이라도 허투루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 글을 쓰면서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체크리스트를 확인해 보니 해당 작품의 촬영 시기를 1920년대로 수정하여 놓았다.)

이러한 태도는 관장인 데보라 벨이 수십 년의 세월을 사진에 천착하며 쌓아 온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러한 걸 느끼게 해 준 또 하나의 사례는 전시 체크리스트였다. 전시된 각각의 사진들이 실렸던 사진집들에 대한 모든 reference를 함께 적어 놓은 건 그만큼 디테일 하나 가벼이 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뉴욕에서 즐기고 있는 모든 전시, 작품 하나하나가 경중 구분 없이 소중하지만 Deborah Bell 같은 작은 갤러리에서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하면서도 소중한 배움의 시간들은 역시 큰 갤러리들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할 즐거움일 것이다. 시간이 들더라도 조금 더 다양한 곳들을 찾아다니며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뉴욕에 오게 된다면 유명한 박물관뿐만 아니라 구석구석 숨겨진 갤러리들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Debora Bell Gallery
  • 주소: 16 East 71st Street, Suite 1D, 4th Floor, New York, NY 10021
  • 운영시간: 화 – 일 11:00 am – 6:00 pm
  • 웹사이트: http://www.deborahbellphotographs.com

*18년 2월 23일 기준.

**Susan Ehrens, <The Errand of the Eye: Photographs by Rose Mandel>, Prestel, 2013, p.9 & p.22. – 저자인 Susan Ehrens는 예술사가이자 사진 큐레이터 및 컨설턴트로 오랜 기간 작가와 연을 쌓아 오며 만델의 작품 세계를 탐구해 왔다.

***California School of Fine Arts(현재는 Sanfrancisco Art Institute).

****Susan Ehrens, <The Errand of the Eye: Photographs by Rose Mandel>, Prestel, 2013, p.26-27. – 화이트는 만델 전시의 서문을 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기회를 통해 만델의 사진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만델은 화이트의 제안들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책, p.28-29.

DSCF9758.jpg

고풍스러운 타원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DSCF9756

갤러리 입구. 부슬비가 내리던 날, 문 앞에 작은 우산이 놓여 있다.

DSCF9751

전시 풍경. 벽난로 위에는 체크리스트와 다른 자료들이 놓여 있고 테이블에는 전시 관련 책자들과 보도 자료들이 있었다. 의자에 걸려 있는 옷과 짐들은 내 것이다.

DSCF9752

뒤쪽의 아치형 구조 뒤로 보이는 것이 출입문, 오른쪽 벽 끝에 붙어 있는 것이 사무실 입구이다.

DSCF9748

Rose Mandel, <Untitled (Sunshine on a wave)>, 1964.

DSCF9749

Immogen Cunningham, <Amarilys>, 1933.

DSCF9750

Immogen Cunningham, <Triangles>, 1928.

카테고리:Essay, Review태그:, , , , , , , , ,

1개의 댓글

  1. 사진가는 뉴욕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쭉 따라오면서 느겨지는 것은 분위가 자체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는…

    Liked by 1명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w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