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사진낚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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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낚시는 몇 가지 점에 있어 꽤 닮아있다.

우선 맨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적당한 장비를 갖추어야하고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외진 곳 마다하지 않고 낮밤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기도 한다. 게다가 세월을 낚는다거나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둥 시간과 관련된 금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무척이나 닮았다.

특히 거리사진_street photography의 경우라면 행동양식마저도 낚시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 예컨데, 고기를 잡으려면 고기가 많이 모일만한 장소로 가야 하는데 사진 역시 마찬가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아니면 반대로 인적이 드문 곳 혹은 현대적인 다운타운 아니면 정감있는 골목이 예쁜 옛동네 등 촬영하고자하는 목적에 따라 그런 사진을 낚을 확률이 높은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한편, 낚시법은 사냥법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어서 브레송적 순간을 낚아채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본들 그런 사진을 찍을 기회는 아이러니컬하게 저멀리 달아나기 십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 것으로도 충분하며, 단지 길 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과 표정, 소리와 냄새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집중력과 열린 감각이 중요하다 하겠다. 그렇게 잔잔한 수면 위로 찌를 늘어뜨린 채 기다리다 보면 미끼를 무는 한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순간, 사진가는 미리 세팅해 두었던 카메라를 눈 높이로 들어올린 후 셔터를 누르면 된다. 내가 아닌 사진이 내게 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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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_11_hp5 35cron 홋카이도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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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사진이 낚시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그렇다치고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찍으면 되나.

연출이 아닌 이상 거리에서 스트레이트하게 찍는 사진은 당일 사진가의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 컨디션과 우연한 주변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전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그 날의 사진에 녹아들테니 논외하고 후자의 우연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날 그날 주어지는 우연성은 사진생산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생산성이라 함은 투입 대비 산출의 효율을 말하는데, 제 아무리 천재적 감각을 가졌다한들 순식간에 주어지는 우연한 순간들을 동물적 감각으로 차곡차곡 챙겨갈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동물적 순발력의 영역 역시 오랜 훈련과 숙련으로 일정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하겠으나, 이러한 작살형 낚시꾼보다는 그물이나 낚시대를 이용한 방식이 생산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우리의 레전설 브레송 할아버지 역시 50미리 낚시대를 애용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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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Cartier-Bresson, France, The Var Department, Hyeres,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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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스릴 넘쳐뵈는 작살은 잠시 잊고, 무난한 찌낚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음…무작정 낚시대만 드리운다고 월척이 건져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현실은 우리에게 유난히 냉혹한 것.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모든 일에 왕도란 없다지만 이왕 가는 길 편하게 도와줄 팁이나 노하우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경험으로 검증된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소극적 방법부터 보다 적극적인 방법 순서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이바구에 정답 따위는 없다. 다분히 개인차가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개인이 처한 환경에도 종속되는 법이니 도움이 될만한 것들만 골라서 취사선택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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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낚시형 –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사진낚기다. 목 좋은 곳에서 찌를 드리우고 사진을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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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효자동 주변 동해남부선 폐선부지에는 요즘 공원조성이 한창이다.

얼마전 일부구간 공사가 완료되어 주말산보 삼아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오솔길 형태의 공원길을 조금 걷자 길 어깨에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놀기 좋은 형태였는데, 기하학적 구성 위에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움직임을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프레이밍하고서 미리 짜둔 프레임에 적당한 모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간만에 따스했던 날씨 덕에 아이들은 충분히 활동적이었고, 그리 오래걸리지 않아 한 자리에서 5컷을 순식간에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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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첫번째에서 네번째는 촬영 전부터 어느정도 예상했던 구성이었는데 반해 다섯번째는 뜻밖의 행운 자체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내가 풍경 속에 묻혔던 순간이자 우연성이 내게 주는 선물같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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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_29_hp5 35cron 송도어판장 효자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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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물형 – 사진이 될 만한 풍경인데 특별한 기약이 없다면 일단 찜해 둬라. 기회는 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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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하나 들어가주면 아주 그만일텐데 도둑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지 않던 경험쯤 하나씩은 있으리라.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기엔 무모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한 인내하시는 분이라면야 첫번째 팁처럼 낚시대를 드리우고 기다리시면 되겠다.  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는 분들은 내 경험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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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_36_hp5_35cron 스튜디오시티 베네시안 타이파스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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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나는 매력적인 골목을 품은 타이파빌리지를 탐험 중이었다. 어느 포르투갈 레스토랑 벽면에 자기네 식당으로 호객하는 포즈의 모자이크가 눈에 띄었다. 저 삐끼의 유혹을 뒤로하고 무심하게 제 갈길가는 행인의 장면이라면 분명 흥미로운 사진이 될 것 같았다. 일단 비어있는 풍경을 한 컷을 눌렀다. 그리고 5분 정도 주변을 서성였을까? 여전히 무척이나 이른시간이었던 터라 지나가는이 하나 없다. 무작정 기다릴 순 없는 여행자의 형편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골목탐험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주변 골목을 1시간 가량 더 돌고나니 골목 구석구석 사람들의 발길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지도를 들고 타이파빌리지를 탐험하는 또 다른 여행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 친구라면 아까 완성하지 못했던 그림을 만들어줄 것만 같았기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동선을 주시했다. 드디어 아까 찜해두었던 골목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잽싸게 바로 한칸 옆의 골목을 달려 적당한 포인트에 섰다. 내 예상은 적중했고, 결국 잊지못할 사진 한 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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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_32_hp5_35cron 타이파스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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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살형 – (억지비유로 거친표현이 되었지만)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촬영방법이다. 흥미로운 피사체를 추적하며 촬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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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를바 없는 늦은 오후의 나른한 송도해수욕장. 방파제 위 서넛의 낚시꾼들은 미끼를 끼우거나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간간히 반려견과 바닷가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스쳐갔다. 지극히 단조로운 풍경이 심심해질 무렵 어디선가 투망을 어깨에 둘러맨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인도양 어느 원시해변에서나 볼 법한 투망이라니!

나는 앞뒤 잴것 없이 무조건 뒤를 쫓았다. 할아버지는 멀찍한 시선으로 바다를 주시하다가 물 속으로 불쑥 들어갔다. 무릎 정도의 수심까지 걸어 들어가시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시고는 고기떼를 추적하듯 바다 밑을 예의 살핀다. 무언가 곧 발사될 거란 예감에 셔터 위로 올려둔 검지에도 긴장이 감돈다.

바로 그때였다. 춤추듯 부드러운 허리놀림에 투망꽃은 활짝 피어오른다. 할아버지는 수면 위로 우아하게 안착한 투망을 슬그렁슬그렁 끄러모으시고는 뭍으로 나오셨다. 투망과 송도바다에 믿음이 부족했던 나는 무역줄기나 어지럽게 얽히지 않으면 다행일거라 생각했지만, 문외한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보따리 풀듯 펼쳐놓은 투망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어무리는 나로 하여금 입을 딱 벌리게 했고, 투망 할아버지에 대한 찬사로 안내했다. 특별할 것 없는 나른한 주말저녁으로 마감할 줄 알았던 송도바다에 주어진 깜짝 이벤트에서 나는 1롤 남짓을 촬영하였고 투망할아버지 이야기는 8장으로 추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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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작가 David Hurn은 거리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The only two variables you can control are where you stand, and when you press the shutter”

거리사진은 사진의 다른 장르와 달리 사진가가 예측 혹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거리사진의 중독성 강한 매력 또한 이러한 한계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여러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낚아올리는 월척의 손맛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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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손에 익은 작은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거리로 나서보자. 그리고 설령 조황이 좋지 않은들 실망하지 마시길.. 그대는 이미 시나브로 봄의 거리를 온 몸으로 호흡하고 온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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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Essay, uncategorized태그:, , , ,

1개의 댓글

  1. 낚시성 글(?)은~ 가르침을 주시는 샘물과도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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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르침입니다. 요즘은 작살질(?)은 못하겠고 풀떼기나 찍고 있습니다만 역시 짜릿한 손맛이 그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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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 분…갈수록 매력이네요.
    좋은 글과 사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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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i-x 좋네요. 저도 그물형(??)으로 노려 놓은 곳이 몇 곳 있는데 망원 렌즈 구비할 때까지(??) 안 가려구요, 크크.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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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낚시와 사진의 비유가 대박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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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많이 배우고 … 그리고 정리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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