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Milk Gallery


문화적 감각이 있는(Culturally coscious) 회사라는 소개글을 달아 놓은 Milk 그룹에서 운영하는 Milk 갤러리는 뉴욕의 여타 상업 갤러리라기보다는 비정기적으로 이벤트성 전시를 진행하는 공간에 가깝다. Milk Group Company는 뉴욕과 LA에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인화를 포함한 디지털 이미징 작업, 홍보/마케팅 이벤트 운영, 모델 캐스팅 및 메이크업까지 일종의 통합 문화/이미지 서비스 기업이다.

첼시 마켓 건물의 끝자락과 길 하나를 건너 마주한 450 West 15번가 건물의 지상층에 위치한 Milk 갤러리는 외부로 향한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볕이 매우 잘 드는 구조이다. 반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간 높이에 있는 갤러리는 중간중간 회전 및 이동이 가능한 가변 벽들을 활용하여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시 외 다른 이벤트를 위해서도 활용하기 때문에 공간 면적이 매우 넓은 편이다.

이번에* Milk 갤러리를 찾아간 까닭은 사진집단 매그넘과 후지필름의 협업 프로젝트인 <HOME>**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16명의 매그넘 사진가들이 “집(Home)”이라는 단일한 주제 아래 각자의 시선으로 담은 작품들로 후지필름의 중형 디지털카메라인 GFX50S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X 시리즈 카메라들로 보완하며 작업한 프로젝트이다.

참여 작가들은 올해로 90세인 엘리엇 어윗(Elliot Erwitt)과 아시아 최초의 매그넘 멤버인 히로지 구보타(Hiroji Kubota) 등의 노장들부터 비교적 최근 매그넘에 합류한 조나스 벤디크센(Jonas Bendiksen) 등 신진 세대들까지 다양하게 아우르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 후지필름의 홍보성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아무리 매그넘이라 해도 전시 자체에 많이 끌렸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일 도슨트이자 강연회를 진행한 데이빗 앨런 하비(David Alan Harvey)가 아니었다면 아마 굳이 전시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Cuba>와 <Divided Soul> 등으로 유명한 하비 선생님은 작년 12월 뉴욕에서 열린 제주 해녀 특별 전시회 오프닝 때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가까이서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하비의 작품 설명은 사진 자체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살짝 가미된 유머들이 더 귀에 들어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 제목에 보이는 것처럼 집(Home)을 담는 것이었어요. 그냥 집에 있으면서 사진을 찍고 돈을 받으면 되니 솔직히 이번처럼 편한 일은 없었죠. :)”

대부분의 사진을 실제 살고 있는 집에서 찍은 엘리엇 어윗의 작품들 앞에선 부동산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여기 이 사진 속의 뉴욕 풍경 멋지죠? 여러분 그거 아세요? 어윗에게는 센트럴파크가 아주 잘 보이는 집이 있어요. 그것도 두 채나 있죠. 전 솔직히 조금 부러워요.”

이탈리아 출신 작가 알렉스 마졸리(Alex Majoli)의 작품들 앞에선 요리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알렉스 마졸리는 칼라를 아주 인상적으로 찍는 친구죠. 이 사진들 보시면 아실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 실은 파스타를 엄청 맛있게 요리한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그의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 있어도 그의 요리는 좋아하게 될 겁니다.”

16명의 시선으로 바라 본 “집(Home)”은 그 시선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로웠다. 물리적인 집의 공간에서 시작해 가족의 범위로 확장되는 집의 개념, 그리고 고향과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들로 퍼져 나가는 집까지. 단순히 단어 하나의 의미로 정의될 수 없는 “집(Home)”의 모습들이었다.

전시 관람에 이어진 하비의 강연회는 준비된 100석의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주변에 둘러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찰 만큼 성황이었다. 매그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하비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니 물론 그럴 법도 하다 싶었다.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사진의 길과 최근 작업들, 그리고 젊은 작가들에 대한 조언은, 언뜻 들으면 이미 성공한 선배 세대의 충고쯤으로 비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새겨들을만했다. 미래의 결과를 기대하기 전에 눈 앞의 작업에 충실하라는 것. 자신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돈도, 이름도, 그 아무것도 없이 그저 아이 딸린 유부남 학생 사진가였던 하비의 이야기는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하비는 특히 지금 세대의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을 많이 주었는데, 명성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라는 이야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역시 당연한 것이 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해 주었다. (하비는 자신이 창간한 온라인 매거진 Burn***을 통해 신진 사진가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을 여러모로 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매거진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 전시 방문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하비가 자신의 학생이라고 소개한 사진가 아거스 폴(Argus Paul)****의 작업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하비의 강연회가 끝난 후 잠시 훑어보기 위해 집어 든 폴의 사진집은 놀랍게도 세월호와 단원고 학생들에 관한 다큐 작업이었다.

“어? 이거? 너 이 일을 어떻게 알고 작업한 거니?”

“아.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사촌을 사고로 잃었거든. 그 이후 세월호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

뉴욕의 한적한 갤러리에서 마주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작업이라, 그리고 마침 4월이 찾아오고 있던 터라 아마도 폴의 작업이 더 눈에 들어왔을 테다. 알고 보니 서울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교포 사진가인 폴은 세월호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 사회의 여러 이슈들에 관해 많은 기록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이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지금 이곳은 4월 16일이다. 4년 전 그때, 나는 독일에 머물고 있었는데 수십 년째 독일에 살고 계신 고모님과 독일계 혼혈인 사촌 형, 동생을 보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저 어린 학생들을 저렇게 보내 버리는 나라의 모습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라는 생각이었다.

다만 뉴욕 한 구석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언젠가는 그날의 모든 슬픔들이 보듬어지길 바라본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Milk Gallery
  • 주소: 450 W 15th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월-금 10:00 am – 6:00 pm / 토-일 11:00 am – 7:00 pm
  • 홈페이지: http://www.themilkgallery.com

*18년 3월 11일 기준.

**전시 홈페이지: http://home-magnum.com/en/

***http://www.burnmagazine.org

****http://www.arguspaul.com

DSCF9954

전시장 풍경. 가변 벽들을 활용하여 전시 공간을 구성하였다.

DSCF9952

<HOME> 전시.

DSCF9962

작품 설명을 진행 중인 하비 선생님.

DSCF9956

엘리엇 어윗의 작품들. 올해로 90세인 어윗의 2017년 최신작이다.

DSCF9955

어윗 사진 속의 위트는 여전한 것 같다.

DSCF9953

알렉스 마졸리(Alex Majoli).

DSCF9958

유년의 기억을 좇아간 히로지 구보타의 작품들.

DSCF9959

알렉 소스(Alec Soth)와 알렉스 웹(Alex Webb).

DSCF9961

전시장 한편에 있던 후지필름 체험 및 서비스 공간. GFX50S는 생각보다 작고 가벼웠다.

카테고리:Essay태그:, , , , , , , , ,

1개의 댓글

  1. 제 책장 꽂힌 사진집 중에 가장 좋아하는 suffering of light의 작가 알렉스 웹도 보이고,
    데이비드 알란 하비와 엘리엇어윗, 구보타히로지의 작품과 작가를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니..뉴욕이라서 가능한 일인가 봅니다~

    Liked by 1명

  2. 마지막 아거스 폴 작가의 얘기를 들으니 여러가지로 착잡하네요. 그런 일은 이제 이 땅에 앞으로 절대 없어야 할텐데요.

    그나저나 gfx50s.
    생각보다 가볍고 작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무겁고 큽니다 ㅠㅠ

    Liked by 1명

  3. 기라성 같은 할아버지들 …ㄷㄷ

    하비 할아버지 대구도 한번 들러 가라고…막창 대접합니다.^^
    (못도 하나 준비해서 카메라에 사인 받아야 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Liked by 1명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w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