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생각나는


작년 1월, 가고시마 여행을 위해 全규슈 레일패스를 끊었다. 물론 남규슈의 명물 하야노토카제, 이사부로-신페이 그리고 SL히토요시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드디어 레일패스의 구매 명분이었던 클래식 특급열차여행을 시작하는 날이 되었고, 우리는 가고시마츄오역을 출발해 요시마츠까지는 하야토노카제를, 요시마츠에서 히토요시까지는 이사부로-신페이를 이용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기대가 컸던 (클래+무식하게 진짜 석탄을 때워 동력을 얻는) 증기기관차 SL히토요시는 운휴상태였다. 매년 12월부터 익년도 2월까지는 쉰다는 것.

.

.

.

hitoyoshi-1

.

우리는 일단 이사부로-신페이의 종착지인 히토요시역에 내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비록 증기기관차는 아니지만 다른 열차를 타고 예정대로 구마모토로 갈지 아니면 그냥 다시 가고시마로 돌아갈지 생각하는데, 자그마한 히토요시역 구내에 관광안내소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에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화려하지 않지만 일본 특유의 정갈한 실내가 맘에 든다. 마침 한국어로된 관광지도가 있어 하나 집어 들었다. 안내서에는 히토요시가 ‘규슈의 작은 교토’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마법의 주문과도 같이 ‘교토’라는 말에 우리는 그만 마음을 쏙 빼앗겨버렸다.

.

TheLittleKyoto

.

히토요시(人吉),

이름만으로도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동네다. 사전정보 없이 미지를 탐험(?)하는 것 또한 여행의 재미 아니겠냐며 우리는 반나절 가량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

.

.

hitoyoshi-2

.

역 광장에는 지금은 없어진 히토요시성 천수각을 축소한 모형 시계탑이 세워져 있다. 정시가 되면, 인형극을 볼 수 있다는데 짜드라 그런데 별 관심 없는 우린 그냥 패스~

.

.

.

hitoyoshi-3

.

쿠마몬 옆에서 포즈 한번 부탁했더니 저 모냥이다;

.

.

.

hitoyoshi-4-1

.

.

hitoyoshi-4-2

.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 나가면 아오이 아소 신사에 도착한다. 규슈에서 두번째로 국보에 등재된 신사라는데 별다른 감흥은 없다. 당연히 첫번째가 어딘지도 안물안궁. 그보단 경내에 있는 도도한 장닭들이 오히려 재밌었던 기억이다.

.

.

.

hitoyoshi-5

.

관광지도에 표시된 추천 방문지를 보니 인구 3만의 조용한 도시에도 꽤 훌륭한 주조장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신사를 나서 잔잔한 구마강 다리를 건넌 후 히토요시 특산품 구마소주를 제조하는 센게츠주조장으로 향했다. 주조장에서는 무료견학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입구 안내소에서 신청서를 써낸 후 잠시 기다리면 안내자가 나온다. 견학자가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라 가능한 운영형태일 것이다.

.

.

.

hitoyoshi-6

.

15분 가량 안내자의 설명이 곁들여진 소주공장 견학의 마지막은 ‘시음&쇼핑’이었는데, 방 전체가 술판(?)이다. 테이블마다 원재료와 도수 그리고 숙성기간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소주 8병이 놓여있고 시음용 잔이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1인당 시음시간은 15분이고 안주는 제공되지 않는다.

.

.

.

hitoyoshi-8

.

달큰한 낮술 몇 잔을 뒤로하고 다음코스는 히토요시 성터다.

.

.

.

hitoyoshi-9

fuji x-t1, xf 23mm f1.4

.

hitoyoshi-10

leica m6, summicron 35mm f2, ilford hp5

.

성의 정문인 오테몬이 있던 자릴 지나 히토요시성 역사관 건물 앞쪽에 병풍처럼 늘어선 고목들이 시선을 붙들어맨다. 나는 같은 포지션에서 디카랑 필카를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란히 놓고보니 흑백필름은 마치 앞으로 자라날 가지마저 영혼의 붓이 그려넣은 듯 한결 드라마틱하다. 비록 늦은 시작이었으나 지금은 필카가 주력이 된 이유다.

.

.

.

.

본격적으로 성터를 한바퀴 둘러본다. 12세기부터 19세기 유신으로 히토요시 번이 폐지될 때까지 이 지역의 맹주였던 사가라 가문의 성이 있던 자리이며 지금은 검은 석벽과 성터만 남아있다. 석축계단을 따라 산노마루, 니노마루에 오르면 한가로운 히토요시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

1월말 비수기의 영향이었을까? 성터를 둘러보는 내내 관리인으로 보이는 서넛과 행인 몇몇을 본 게 다일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잘 가꾸어진 숲과 돌계단 그리고 허리 굽은 늦오후 햇살은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기에 완벽함 그 자체였다.

.

.

.

hitoyoshi-17

.

떠나기 전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만족스웠던 여행의 족적을 복기 중인 여사님.

.

.

.

hitoyoshi-18

.

여행의 시간은 짧은 반면 일상은 길고도 지루한 법이다.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듯 따분한 일상 중에도 불현듯 생각나는 여행의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여행이 끝나고 1년이 흐른 지금 히토요시는 나에게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런 곳 중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우리가 문득 히토요시를 찾았던 우연한 첫 만남처럼..

.

.

.

***

.

TheLittleKyoto map

The ‘little kyoto’ map

카테고리:Drifting, Essay, uncategorized태그:, , , , , ,

1개의 댓글

  1. 가족 동반 쿄토라~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네요. 부럽습니다.

    그리고 증기기관차 말입니다. 곡성기차마을이라는 곳이 생각났습니다.

    좋아요

    • 곡성기차마을이라.. 검색해보니 섬진강기차마을로 홍보하고 있네요.
      동명의 영화를 생각하면 오히려 연인을 타겟으로한 본격 납량테마로 꾸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ㄷ

      좋아요

  2. M이 담은 장면에 대한 표현이 너무나 시적이라…역시 M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 그나저나 제가 일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교토인데 ‘작은 교토’라니 저도 언젠가 가 보고 싶네요.

    Liked by 1명

    • 저 역시 교토를 제일 좋아하기에 ‘작은 교토’라는 홍보문구를 덥썩 물었답니다.
      큰 기대는 마시고 소도시 특유의 내성적이고 한적한 분위기가 좋으시다면 남규슈 관광일정에 끼워서 한번쯤 와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Liked by 1명

  3. 중간에 엠육호 사진 ㄷㄷㄷ
    가족 사진이 최곱니다.
    ㅎㅎㅎ

    Liked by 1명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w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