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손의 필름생활 엿보기


나는 똥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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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저지르는 어이없는 실수에 페친들은 이제 덤덤해하는듯. 가깝게는 지난달 현상액 대신 맹물을 넣는 바람에 두 롤을 통째로 날려먹은 사건부터 필름이 든 채로 카메라 하판을 오픈한다거나, 다 찍은 필름을 현상릴에 전부 감기도 전에 암백을 해맑게 열어버리는 등 필름을 시작한 후 크고작은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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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맹물현상 + (오) 하판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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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얼핏 망할놈의 똥손남에게 다소 벅차보였던 ‘필름으로 찍고 직접 현상, 스캔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럭저럭 잘 해온 것 같다. 디카로 입문 후 필름으로 역주행하기까지 수많은 선택과 고민, 주변의 도움과 더불어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이에 즈음하여 한때의 나처럼 필름으로 ‘즐기는’ 사진에 대해 궁금하지만 두려움 혹은 걱정이 앞서는 분을 위하여 비록 ‘정석’은 아닐지 몰라도 ‘즐기기’에는 적당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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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앞서 디카와 달리 필름으로 하는 사진생활은 왠지 돈, 시간, 노력 같은 것들이 많이 들 것 같다. 실제로도 필름전성시절에 비하면 필름값이 많이 올랐으며 한때 스타벅스만큼 흔하던 동네현상소들마저 거진 사라져버렸으니 불편하기도 하다.

흑백필름을 주로 쓰는 입장에서 현상소 문제는 직접 현상하면 되니 큰 장애가 아니라지만 비용 문제는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봤다. 디지털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초기 투자가 필요한 필름카메라와 스캐너 구입 비용은 별도로 하고 소모품 위주로 계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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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물품>
① 필름: ilford hp5+ 100 feet roll film – 65불
② 현상액: kodak d-76 – 7불
③ 정착액: kodak fixer – 13불
④ 수세촉진제: kodak hypo – 7불
   * 가격: ‘18년 5월, B&H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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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피트 벌크필름을 필름로더로 감으면 36방짜리 20롤을 만들 수 있다. 20롤에 7만원이니 국내 유통되는 흑백필름의 반값인 롤당 3500원으로 해피 프라이스!

현상액, 정책액, 수세촉진제 역시 파우더 타입의 제품은 한 봉지당 1 갤런(3.8리터)의 솔루션을 만들 수 있으며, 이 역시 직구하면 국내 유통가의 절반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연간 소요비용 산출에 있어 편의상 일주일에 1롤 소비를 전제하였고, 필름과 현상액은 1회 사용, 정착액과 수세촉진제는 3회 재사용으로 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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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1롤이면 자가현상을 기준으로 연간 218,605원으로 나온다. 주당 4,200원 꼴이니 아메리카노 1잔값인셈. 누군가에게는 이 금액조차 클수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을수도 있으니 금액의 크고작음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며, 이제 본격적으로 벌크필름으로부터 필름을 준비하고 촬영된 필름을 현상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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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름 준비하기

필름로더에 벌크필름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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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들지 않는 암실에서 오로지 손감촉에 의지하는 작업이라 밝은 데서 여분의 필름스트립을 가지고 사전 연습이 필요하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로더 배출구로 필름을 끼울 때 아래와 같이 삼각뿔 모양으로 자르면(물론 암실에서) 그닥 어렵지 않게 필름 끝단부를 밖으로 빼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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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로더, 100피트 롤필름, 가위, 암실(이를 테면 야밤에 창문 없는 화장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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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방법>
① 필름로더 뚜껑을 미리 열어두고 손이 닿는 위치에 가위를 준비함
② 화장실 불을 끄고 완전히 빛이 차단된 암실상태에서 100피트 롤필름 상자뚜껑을 열면 손바닥 크기의 롤필름이 검은 비닐봉지로 포장되어 있음
③ 봉지에서 필름을 꺼낸 후 점착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는 필름 끝단부를 찾아 떼어냄
④ 필름 끝단부를 찾아 준비된 가위를 이용해서 (대충) 삼각형 모양으로 커팅
⑤ 필름로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필름 끝단부를 빼낸 후 톱니바퀴에 걸리는게 확인되면 필름 전체를 필름로더 축에 끼운 뒤 뚜껑을 닫음
  * 유튜브 참고영상 – How To: Bulk Load Film by Tim Heu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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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로더를 이용한 감은필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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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로더, 끝단부가 조금 남아있는 빈 필름통, 가위, 스카치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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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방법>
① 빈 필름통 끝단부에 스카치테이프를 절반가량 접착되도록 붙임
② 방향에 유의하여 필름로더에 혀처럼 빠져나와 있는 필름과 연결 (필름의 툭 튀어나온 꼭지부분이 오른쪽으로 향하게)
③ 필름을 되감아 빈필름통을 필름로더에 밀착시킴
④ 뚜껑을 덮고 필름카운터를 ‘▲’에 맞게 다이얼을 조정한 후 ‘크랭크’를 끼움
⑤ 크랭크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필름 카운터가 돌아감과 동시에 필름이 감기기 시작함
⑥ 시중에 파는 필름과 유사한 길이를 말아넣기 위해서는 필름카운터를 ‘▲+1’에 위치할 때까지 크랭크를 돌림
⑦ 다 감았으면 크랭크를 빼고 뚜껑을 열어 적당한 길이로 빼낸 후 필름을 자름
⑧ 카메라 로딩이 쉽도록 끝단부를 곡선 모양으로 잘라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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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촬영이 끝난 필름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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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릴에 끼우려면 필름 혀가 나와있어야 한다. 그러니 한 롤 촬영이 끝나면 리와인딩을 끝까지 하지말고, 충분히 감았다싶으면 천천히 돌리면서 딸깍하고 풀리는 소리와 느낌(?)을 기다린다. 이 때 반바퀴 정도만 더 돌린 후 필름을 빼면 적당히 혀가 나온 상태로 필름을 뺄 수 있다. (라이카 M6 리와인딩 놉의 경우 32번 가량 회전하면 풀림)
그래도 필름이 들어가버렸다면 ‘Film Picker’라는 도구를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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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피커, 혀가 말려들어가버린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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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방법>
① 필름통 입구에 필름피커의 ‘1번’ 부분을 끼움
② 필름피커와 필름통을 잡은채로 ‘2번’ 버튼을 필름으로 밀어넣기
③ 이어서 필름피커와 필름을 잘 고정한 채로 반시계방향으로 필름을 감으면 ‘딸깍’하는 소리가 들리는 지점이 발생함
④ ‘딸깍’소리가 들리면 감는 것을 중지하고 ‘3번’ 버튼을 필름으로 밀어넣기. 이때 필름이 밀려 돌아가지 않도록 꼭지까지잘 붙잡아 고정시켜야 함
⑤ 마지막으로 필름을 빼기 위해 필름피커를 필름통으로부터 당겨 빼면 필름 끝단부가 ‘메롱’하듯 튀어나옴. 이때는 반대로 필름이 내부에서 잘 돌아 빠지기 쉽도록 필름꼭지를 고정시키지 말아야 함

* 유튜브 참고영상 – How to retrieve the film leader from a 35mm cassette using a film picker by Jack the Hat Phot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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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 찍은 필름, 현상 릴에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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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성들여 찍은 필름을 현상해 볼 차례다.
현상을 위해서는 다 쓴 필름을 릴(Reel)이라는 장치에 두루마리 휴지 말듯 감아넣어야 하는데, 자가현상을 준비하면서 제일 걱정되고 까다로워보였던 작업이기도 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여러 번 숙지한 후 암백에서 첫 릴을 감았고 입구만 잘 찾아끼워넣으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자. 개인적으로 초기에는 암백을 이용했으나 좁고 답답한 관계로 화장실에서의 작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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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암백 혹은 암실, 다찍은 필름, 현상릴(Reel), 현상탱크,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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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는방법>
① (옵션) 현상 릴(Reel)에 잘 감기도록 필름 끝단부 양 귀퉁이 커팅해서 준비해 둠
② 현상을 앞 둔 필름은 100% 차광된 공간에서 릴에 감아야 하므로 암백을 이용하고, 암백이 없는 경우 완전히 해가 진 후 창문이 없는 화장실에서 불 끄고해도 좋음
③ 암백에 필름, 가위, 현상탱크, 현상릴을 넣고 손끝 감각에 의존하여 플라스틱 릴에 감은 후 가위로 커팅
④ 릴에 모두 감았다면 현상탱크에 릴을 넣고 뚜껑을 확실하게 닫아 차광한 후 암백에서 빼냄
* 유튜브 참고영상 – Loading 35mm Onto Patterson Reel by Nam Tran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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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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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노광된 필름을 적절한 약품처리를 통해 이미지를 나타내는 과정이다. 크게 “현상-정착-수세”의 과정을 거치는데, 라면 끓이는 것보단 좀 더 복잡하지만 어쨋든 요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냄비-현상탱크에 재료-필름을 넣고 물과 양념-현상약품-을 레시피에 따라 요리해주면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참고로 라면 따라 레시피가 다르듯 필름 따라 현상시간이 다른데, 구글에 ‘(필름이름) Datasheet’로 검색하면 제조사에서 공개한 표준 현상데이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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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6 35mm 400/27 기준으로 제조사별 주요 필름의 현상시간은 아래와 같다.

– Ilford : HP5+ 400 11분, Delta 100 9.5분, Delta 400 14분, FP4 125 9분, PanF 50 6분
– Kodak : 400tx 9.75분, Tmax 100 9.5분, Tmax 400 12.5분
– Fujifilm : Across 100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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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 현상탱크, 현상릴(플라스틱 릴 추천), 필름피커, 암백, 가위, 온도계, 비어커, 필름클립, 타이머 혹은 현상어플(iOS의 경우 무료앱인 “Develop!” 추천)
– 현상액, 정지액, 정착액, 수세촉진제, 포토플로(수적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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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방법>  * Ilford HP5+기준

a. 전습(Pre-wetting), 물 20도 내외, 1분간 실시
– 전습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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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현상(Develop), D76 working solution 300ml : 물 300ml, 현상액 온도 20도, 11분간 실시
– 현상액 투입 후 60초간 연속교반
– 30초마다 5초 교반
– 마지막 10초 전부터 버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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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정지(Stop-bath) Kodak Indicator Stop bath, 스탑배스 9.6ml : 물 590.4ml, 20도 내외, 1분간 실시
– 정지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실시
– 노란색의 용액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할때까지 재활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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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정착 (Fix), 파우더 타입으로 만들어 둔 Kodak Fixer 600ml (working soltuion 600ml), 20도 내외, 10분간 실시
– 현상방법과 동일하게 교반
– 최초 1분간 연속교반 후 매 30초마다 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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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수세 (Washing) , 파우더 타입으로 만들어 둔 Kodak Hypo Clearing Agent를 물과 1 : 4비율로 희석 (stock solution 120ml : 물 480ml)
– 흐르는 물에 30초 수세 (수시로 교반 및 물교체)
– 수세촉진제에 2분 연속 교반
– 흐르는 물에 5분 이상 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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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포토플로 (Photo Flo), 1 : 200 비율(3ml : 600ml), 1분 담그기
– 포토플로에 1분간 담그면 됨. 거품 생기므로 교반금지
– 필름클립에 끼운 후 그늘진 곳 매달아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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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자잘하게 준비할 것도 많고 절차도 복잡해보이지만, 약품 섞는 ‘비율’과 ‘온도’ 그리고 ‘시간’만 잘 지키면 별 문제 없이 현상이 잘 되어나온다.

제시된 수치들은 한 치의 오차 정도는 가볍게 허용해주므로 너무 강박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으니 안 그래도 머리아픈 세상 이런걸로 스트레스 받지는 마시라. 다만 현상과정의 화학반응은 온도에 민감하므로 현상액 온도만은 최대한 20도±0.5로 맞추어 작업하자.

 * 유튜브 참고영상 – Developing B&W film by Mat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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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상 이후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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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된 필름은 6컷씩 잘라 “니콘 쿨스캔 4ED”로 스캔한다. 최대 해상도 TIFF포맷으로 스캔하며, 1컷에 2분정도 소요되므로 1롤 38컷을 다하면 통상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스캔이 끝난 6컷짜리 필름스트립은 “HAMA Negative Sleeves”에 끼워 바인더 형태로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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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파일은 ‘촬영날짜_촬영장소_필름명”의 형태로 작명된 폴더에 저장한 후 포토샵 힐링브러시와 도장툴을 이용해 스캔이미지의 결함(먼지, 스크래치 등)을 제거해준다. 이로서 필름의 ‘디지털 원본’을 확보하게 되며, 원본파일들은 라이트룸으로 Import 후 트리밍과 후작업, 리사이징(900~1200px)을 통해 블로그나 SNS용 사진을 별도로 Export하여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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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Essay, Review, uncategorized태그:, , , ,

1개의 댓글

  1. 우와…필름 끝판왕…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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