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sepiaEYE Gallery


에사 엡스테인(Esa Epstein)이 2009년 설립한 sepiaEYE 갤러리는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는 아시아권 작가들을 전문으로 소개하고 있는 갤러리이다. 소속 작가들을 살펴보면 아시아권 작가들 중에서도 주로 인도와 일본 작가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인도 작가 라후비르 싱(Raghubir Singh)과 부펜드라 카리아(Bhupendra Karia)를 포함하여 이십여 명 남짓의 작가들을 대표하고 있다. 현재 소속된 한국인 사진가로는 김수강(Sookang Kim)이 있는데 일상 속 사물들을 정물로 담아 고무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 방식으로 인화하는 것이 특징으로 사진 인화가 아닌 듯한 무채색 파스텔톤의 느낌이 인상적인 작품들이다.

첼시 서쪽 끝자락 11번가 쪽에 자리한 547 West 27번가 건물 6층에 위치한 sepiaEYE 갤러리는 중앙의 메인 전시 공간과 차단벽 뒤쪽으로 나누어진 두 곳의 사무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높은 층고 때문에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트인 인상을 주는 전시실로 들어서면 문 왼쪽으로 놓인 작은 사각 테이블 위에 팸플릿과 체크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다. 전시실 가운데에 놓인 둥근 탁자는 갤러리에서 출판한 여러 작가들의 사진집을 늘어놓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사무 공간은 한쪽의 관장실, 그리고 반대쪽의 작품 보관 및 다른 물품들을 놓는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관장실 한 켠에는 전직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 대통령하고 같이 사진 찍었네?”

“그래.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전 대통령이지.”

“하하…”

내가 뉴욕의 사진 갤러리들만 찾아다니고 있다고 하니 혹시 필요한 자료는 없을지 이것저것 챙겨 주려던 친절한 관장과의 대화를 뒤로 하고 한번 더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일본계 사진작가 오사무 제임스 나카가와(Osamu James Nakagawa)의 <Kai> 전이다. 50점의 흑백, 칼라 사진과 4분 35초 분량의 영상 작업 한편으로 구성된 전시는 개략의 시간순에 따라 작품을 배치하여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도록 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교 교수인 나카가와가 20여 년에 걸쳐 작업한 Kai 시리즈의 출발점은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마주한 1998년이었다. 마침 아이를 임신 중이던 아내와 함께 새 생명을 기다리던 나카가와에게 불현듯 가까이 다가온 아버지의 병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담기 시작한 그와 가족들의 삶이 일본어로 순환을 뜻하는 Kai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내밀한 가족사의 기록이 된 나카가와의 사진들은 한 사람의 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휴머니즘의 내러티브가 되었다.***

개인적인 취향도 있지만 이렇게 세월을 관통한 작업을 만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건 사진이 품고 있는 시간의 힘이다. 아버지의 죽음, 아이의 탄생,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장성한 딸의 출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쌓여 간 시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 순간의 이미지로는 쉽사리 담아낼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는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시간과 사진들이 함께 켜켜이 누적되어 가면서 만들어낸 힘에 다름 아니다.

전시된 작품들 중 특별히 더 와 닿았던 건 늙은 어미의 손에 달라붙은 이쿠라(연어알)를 클로즈업 한 <Ikura, Tokyo, Summer 2010>과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거친 숨결을 반복되는 영상으로 편집한 <Breath, Single chanel video with audio>였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가까이 다가가며 기운 빠진 늙은 어미의 손가락에 달라붙은 새 생명들(이쿠라)이 주는 역설적인 느낌은 단순한 한 장의 사진 이상의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쿠라가 무엇인지 조금 더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이기에 받은 인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임종 직전의 거친 숨소리와 초점 흐린 어머니의 시선이 아무런 말 없이 반복적으로 보이는 <Breath>의 영상은 의도적인 흔들림을 통해 어머니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나카가와의 날 것의 감정을 전달했다.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마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숨이 차면서도 계속적으로 들고 나는 숨소리는 목전에 와 있는 죽음을 그대로 맞닥뜨리는 느낌이다.

sepiaEYE 갤러리가 아시아 작가 전문이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인도와 일본 작가들에 편중되어 있기에 아주 다양한 나라들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한국 작가들이 조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 있다. 그리고 특별히 포트폴리오 리뷰 여부에 대한 코멘트는 없지만 관심이 있는 작가라면 적극적으로 연락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아시아권을 전문으로 하고 있으니 어떤 경로로든 괜찮은 작가가 눈에 띈다면 갤러리로서도 반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홈페이지에 가서 갤러리 소개나 정보를 찬찬히 둘러보며 파악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sepiaEYE Gallery
  • 주소: 547 West 27th st., #608,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수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s://www.sepiaeye.com

*Gum biochromate:  19세기 말 개발된 염료 인화 기법으로 사진 톤의 콘트라스트와 디테일한 부분들의 부드러움으로 유명하였음. 인화 과정에서의 이미지 수정이 상대적으로 쉽고 화가가 그린 듯 부드러운 톤으로 인해 회화주의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은염이 쓰이지 않아 안정성도 높았음.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 프레스, 2017, p. 189. 발췌.

**18년 5월 16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s://www.sepiaeye.com/exhibitions/#/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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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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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실. 뒤쪽 기둥 뒤가 출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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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반대편 차단벽 뒤로 두 곳의 사무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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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은 개략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크기와 배치로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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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Father’s Hands, Bloomington, Indiana, Winter 1999>, <Airplane, Bloomington, Indiana, Winter 2001>, <Pinata, Bloomington, Indiana, Spring 2004>, <Moving In, Muncie, Indiana, Summer 2017>, <Kyle’s Rock, Plainfield, Vermont, Summer 2000>, <Mt. Fuji, Japan, Summer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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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Queen Anne’s Lace, Bloomington, Indiana, Summer 2000>, <Final Conversation, Tokyo, Spring 2013>, <Mangolia, Bloomington, Spring 2010>, <Hands, Tokyo, Summer 2013>, <Blood, Kyoto, Summer 2013>, <Curtain, Tokyo, Spring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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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ura, Tokyo, Summ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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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mu James Nakagawa & Rachel Lin Weaver, <Breath, Single chanel video with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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